기사 메일전송
[이왕조 교수의 고사성어 나들이] - 가도사벽(家徒四壁)
  • 편집국 편집국장
  • 등록 2022-01-07 16:35:13
  • 수정 2022-01-07 17:09:56
기사수정

가도사벽(家徒四壁)

 

[한자 풀이]

家 집 가 

徒 무리 도

四 넉 사

壁 벽 벽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집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네 벽밖에 없다는 뜻으로, 한나라 때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와 탁문군(卓文君)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된 성어이다.

 

 서한(西漢) 시대 임공이란 곳에 탁왕손(卓王孫)이라는 부유한 상인(商人)이 있었다. 그에겐 일찍 남편(男便)과 사별(死別)하고 혼자 살고 있는 딸 탁문군(卓文君)이 있었다. 또 그 지역에는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왕길이란 사람에게 의탁하여 살고 있었다. 젊고 유능한 사마상여는 탁문군(卓文君)에게 연정(戀情)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집안이 너무 빈한(貧寒)하여 탁왕손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녀를 단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탁왕손(卓王孫)이 연회를 베풀어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왕길을 초청하는 일이 생겼다.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그 자리를 이용해 탁문군(卓文君)을 사모하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거문고를 탔더니, 그 연주를 들은 탁문군(卓文君)은 사마상여에게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연회가 끝난 후 탁문군(卓文君)은 용기를 내어 사마상여를 찾아갔고, 사마상여(司馬相如)는 그녀와 함께 그의 집으로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있는 것이라곤 '다만 네 벽만 서있을 뿐(家居徒四壁立)'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탁문군(卓文君)은 실망하지 않고 그와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고 술집을 차려 힘들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 나중에 한 무제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문장을 읽어 보고, 인재를 얻었다하여 크게 기뻐하며 도성으로 불러 벼슬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사마상여(司馬相如)는 필명을 크게 떨치며 일세의 대문장으로 우뚝 섰으며, 탁씨 집안에서도 더이상 그를 얕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생겨난 말이 바로 가도벽림(家徒壁立), 가도사벽(家徒四壁)이다. 우리나라 속담으로 ‘서 발 막대 거칠 것이 없다’에 해당한다. 거도사벽(居徒四壁), 가도벽립(家徒壁立), 상여지빈(相如之貧), 일무소유(一無所有), 계옥지탄(桂玉之嘆), 구복지루(口腹之累), 남부여대(男負女戴), 부중생어(釜中生魚), 삼순구식(三旬九食), 상루하습(上漏下濕), 적수공권(赤手空拳), 초근목피(草根木皮), 폐포파립(敝袍破笠), 포의지사(布衣之士), 호구지책(糊口之策)이란 말과 유의어로 쓰인다. 가재만관(家財萬貫)의 반대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2022년 임인년이 밝았다. 다들 한 살씩을 더 먹었다. 가진 것이 많음을 자랑하고 싶어하기보다는, 가도사벽(家徒四壁)의 처지에 놓여 있는,  낮은 곳에 머물고 있는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성숙한 문화시민의 자세가 요구되는 오늘날이다.. 

1

이 기사에 구독료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최신뉴스더보기
포토뉴스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