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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계포일낙(季布一諾)
  • 이왕조 기자
  • 등록 2022-07-05 14:34:29
  • 수정 2022-07-05 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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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신문=이왕조 기자]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계포(季布)가 한 번 한 약속'이란 말이다. 반드시 틀림없는 승낙이란 말로 쓰인다. 중국 초나라 장수인 계포(季布)가 한 번 승낙한 것은 백금을 얻기보다 더 소중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한 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킨다는 뜻으로 남아일언중천금(南兒一言重千金)이나 계찰괘검(季札掛檢), 일락천금(一諾千金)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진다.

 

진(秦)나라 말기, 초(楚)나라 사람 계포는 의협심과 책임감이 유달리 강해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지켰다. 하루는 친구와 강을 헤엄쳐서 건너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되자 비바람이 몰아치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포(季布)는 약속 장소에 나갔다. 친구가 비바람이 잠잠할 때를 기다렸다가 뒤늦게 약속 장소에 달려가 보니 그는 비에 흠뻑 젖은 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처럼 계포(季布)는 아무리 사소한 약속일지라도 목숨을 걸고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이런 그를 두고 "황금 백 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일낙을 얻는 것만 못하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라고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계포(季布)는 유방(劉邦)과 항우(項羽)가 천하를 다툴 때 항우(項羽) 휘하로 들어가 유방(劉邦)을 몹시 괴롭혔다. 항우(項羽)가 패망하자 유방(劉邦)은 계포의 목에 천금의 현상금을 걸면서 그를 숨겨주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하겠다고 엄명을 내렸다. 계포(季布)는 수배자가 되어 쫓기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를 고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방의 친구인 하후영이 그를 신하로 천거하기까지 했다. 결국 계포(季布)는 하후영의 주선으로 유방(劉邦)을 알현했고 사면(赦免)되어 낭중(郎中)이 되었다. 혜제(惠帝) 때에는 중랑장(中郞將)에 올랐다. 계포(季布)는 조정에서도 의로움을 지키고 잘못을 곧게 지적함으로써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계포(季布)와 같은 인물들이 그리운 오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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